Editorial/Fashion

<B> 기원을 찾아서 10편: 옥스포드 슈즈·더비슈즈, 블러쳐·발모랄 (Oxford Shoes·Derby Shoes, Blucher·Balmoral)

낙낙이 2017. 10. 14. 15:34

<B>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Kingsman: The Secret Service)에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Manners maketh man.)' 다음으로 유명한 대사는 아마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 슈즈(Oxford, no brogues.)'가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옥스포드 슈즈는 아일렛(eyelet) 부분을 뱀프(vamp)로 덮은 클로즈드 레이싱(closed lacing)의 구두를 지칭하고, 이와 비교하여 더비슈즈는 뱀프 위로 아일렛을 박은 오픈 레이싱(open lacing)의 구두를 지칭합니다. 그런데 영국에서 옥스포드 슈즈(Oxford Shoes)는 아일렛 부분이 뱀프로 덮였느냐 아니면 뱀프 위에 달았느냐와 상관없이 '끈 달린 구두'를 지칭하는 단어 쯤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영국이 배경인 킹스맨 1편에서 해리가 말했던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 슈즈(Oxford, no brogue.)'에서 옥스포드 슈즈는 더비슈즈 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에그시에게 'Oxford, no brogue'를 추천하는 해리>

 

그런데 더비슈즈와 비교되곤 하는 옥스포드 슈즈는 발모랄(Balmoral) 이라고도 불리고, 더비슈즈는 블러쳐(Blucher)라고도 불립니다. 이번 '기원을 찾아서 10편'에서는 '옥스포드 슈즈·더비슈즈, 블러쳐·발모랄'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옥스포드 슈즈 · 발모랄 (Oxford Shoes · Balmoral)

 

(1) 옥스포드 슈즈

앞서 말했듯이 옥스포드 슈즈의 기원지인 영국에서 '옥스포드 슈즈'란 슬립온, 몽크 스트랩, 첼시 부츠 등 과 구분되는 끈을 묶는 구두를 총칭합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후에 다룰 '더비슈즈' 또한 옥스포드 슈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보통은 '옥스포드 슈즈'는 클로즈드 레이싱(closed lacing)으로 '더비 슈즈'와 구분되는 의미로 쓰이곤 합니다.

 

<존 롭(John Lobb)의 옥스포드 슈즈>

 

 

그렇다면 왜 옥스포드 슈즈가 '옥스포드' 슈즈로 불리는지 알아보겠습니다. 17세기 유럽의 문화를 선도하는 국가는 프랑스였는데 의류나 신발들도 프랑스의 것이 유럽에서 유행했었다고 합니다. 특히 당시 남성 신발로는 대개 부츠를 많이 신었는데, 끈이 없고 버튼으로 잠그는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825년 경에 하프 부츠(Half Boot)가 옥스포드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이 되어 유명해졌는데, 이를 '옥소니안 슈즈(Oxonial Shoes)' 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이 옥소니안 슈즈는 목이 낮고 신발의 사이드에 좁은 절개선을 내고 캠퍼스에서 신고 다니기에 편했다고 합니다. 이후 신발 사이드의 절개선에 끈(lace, 레이스)를 달았고, 이후에 끈 부분이 신발의 중앙쪽으로 오게 하고 굽을 더 낮추면서 지금의 옥스포드 슈즈가 탄생했다는 것이 정설 입니다.

 

<신발의 사이드에 절개선을 넣었던 1800년대 옥소니안 슈즈>

 

하지만 옥스포드 슈즈의 원형은 옥스포드 대학 내에서 생겨난 것이 아닌 '발모랄(Balmoral)' 부츠의 목과 굽이 낮아지면서 생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옥스포드 슈즈의 기원이 어딨는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겠지만 좀 더 편한 신발에 대한 열망의 결과물인 옥스포드 슈즈는 아무래도 구세대보다는 대학 내의 신세대가 모인 대학에서 탄생했다는 쪽이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2) 발모랄(Balmoral)

그렇다면 옥스포드의 또 다른 기원으로 꼽히는 '발모랄(Balmoral)'은 무엇일까요.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위의 목차에서 옥스포드(Oxford) 뒤엔 '슈즈'를 붙였지만 발모랄(Balmoral)은 뒤에 따로 슈즈를 붙이지 않은 것을 알아채셨을 것입니다. 발모랄은 원래 부츠에서 시작된 것이라 보통 '발모랄 부츠'로 통하며 '슈즈'는 아닌 것입니다. 발모랄 부츠의 특징이라 하면 굽이 낮고, 보통 6~9개의 아일렛(eyelet, 끈 구멍)이 있고, 어퍼에서 레이싱(lacing) 부분 근처의 솔기(seam, 심)가 부츠의 윗부분과 아랫 부분을 구분지어준다는 점 등이 있습니다. 옥스포드 슈즈의 부츠 버젼이하면 생각하기 쉽습니다.

 

<발모랄 부츠인 에드워드 그린(Edward Green)의 섀넌(Shannon)>

 

 

그렇다면 이름도 특이한 발모랄 부츠(Balmoral Boots)는 언제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요. 발모랄 부츠가 탄생한 시기는 지난 '기원을 찾아서 6편: 첼시부츠(Chelsea Boots)'에서 다룬 첼시부츠와 같이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탄생했습니다. 게다가 발모랄 부츠는 지난 번에도 등장한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알버트 공(Prince Albert)를 위해 제작된 신발이었다고 합니다. 사냥터에서도 신을 수 있고 실내에서도 스타일리시하게 신을 수 있는 부츠를 원했던 알버트 공을 위해 고안된 신발인 것입니다. 알버트 공에게 이런발모랄 부츠를 만들어준 슈메이커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1849년에 시작된 사업을 시작한 '존 롭(John Lobb)'이라는 설이 유력한 모양입니다. 혹자는 발모랄 슈즈를 만든 슈메이커는 빅토리아 여왕에게 '첼시 부츠'(이 이름은 나중에 붙여진 이름입니다만.) 를 만들어준 슈메이커였던 J.스파카홀(Joseph Sparkes-Hall)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과 그녀의 부군이었던 알버트 공(Prince Albert)> 

 

 

발모랄 부츠가 정확히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는 밝혀진바 없지만 1852년 알버트 공이 빅토리아 여왕을 위한 별장인 '발모랄(Balmoral)'을 매입한 이후로 추정됩니다. 알버트 공과 빅토리아 여왕이 스코틀랜드 에버딘셔에 있는 '발모랄 별장'을 걷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는데, 아마 '발모랄' 별장에서 자주 신었기 때문에 '발모랄'이라 불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보통 귀족 등의 상위 계층이 신던 신발이 나중에 민간 계층에 유행이 되는 것은 일반적이었지만, 시골길을 걷기 위해 고안된 워킹 부츠(Walking Boots)가 일상용으로 유행처럼 번진 것은 특수한 케이스라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공이 자주 거닐곤 했던 발모랄 성(Balmoral Castle)>

 

 

 

 

2. 더비슈즈 · 블러쳐 (Derby Shoes · Blucher)

 

(1) 더비슈즈(Derby Shoes)

더비슈즈(Derby Shoes)는 보통 옥스포드 슈즈와 대비되어 오픈 레이싱(open lacing)의 신발로 거론되고는 합니다. 더비슈즈는 끈을 묶는 부분이 신발의 뱀프 위에 달려 있어 흔히 옥스포드 슈즈보다는 캐쥬얼한 신발로 통하곤 합니다. 옥스포드 슈즈와의 차이점은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보다는 사진으로 보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습니다.

 

<크로켓 앤 존스(Crockett & Jones, 일명 CJ)의 더비슈즈와 옥스포드 슈즈의 차이>

 

 


더비(derby)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영국 Derbyshire의 주청 소재지' 혹은 '경마'를 뜻하는데, 왜 더비슈즈를 '더비'슈즈라고 하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더비슈즈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1. 영국의 귀족이었던 에드워드 스탠리(Edward Smith-Stanley, 1752~1834)가 Epsom Down(영국의 지명)에서 더비 령(Derby Stake)의 12대 더비 백작으로 취임할 때 신어서 더비 슈즈(Derby Shoes)라고 부르는 것이다.

2. 후에 영국 수상까지 지낸 14대 더비 백작이었던 Edward George Geoffrey Smith-Stanley(1799~1869)는 발 사이즈가 너무 커서 상대적으로 여유공간이 부족한 옥스포드 슈즈가 매우 불편하여 그의 부츠메이커가 오픈 레이스 스타일로 부츠를 만들어준 것이 시초가 되어 '더비'슈즈라고 부르는 것이다.

 

<발 사이즈도 클 것만 같은 14대 더비 백작>

 

3. 더비슈즈의 플랩 부분이 경마장에서 말들이 나오는 게이트와 비슷하여 더비슈즈(Derby Shoes)라고 부르는 것이라는 설입니다.

 

 

 

 

2번 주장이 해외 칼럼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다수설이며 1번이나 3번 주장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번 설도 잘 납득되진 않지만 정설로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2) 블러쳐(Blucher)

이러한 유래를 가진 더비슈즈는 북미권에서 '블러쳐(Blucher)'라고도 불리기도 합니다. 북미권에서 많이 부르는 명칭이긴 합니다만 이 역시 기원은 유럽에 있습니다. 1800년대 초반 나폴레옹은 유럽을 수중에 넣은 후에도 러시아 정복 원정을 나서 군대를 잃었고, 그 후 라이프치히 전투에 나서지만 패배하며 황제 자리를 빼앗기고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은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 명장 웰링턴 공(Duke of Wellington)과 프로이센(당시의 독일)의 명장 블뤼허(Gebhard Leberecht von Blücher)가 이끄는 동맹군에게 참패를 당했습니다.

 

<1815년 워털루 전투(Battle of Waterloo)>

이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워털루 전투 당시 연합군의 총사령관이자 프로이센 육군의 원수였던 블뤼허(Blücher)는 병사들을 위해 신기 편한 군화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19세기 초반 당시 군인들이 신는 군화는 보통 부츠였는데 진흙탕에서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블뤼허 장군이 고안한 부츠는 아일렛이 위치한 플랩이 펼쳐져서 끈을 묶고 푸는 것이 빨라 전투 준비를 빠르게 할 수 있었고, 다른 부츠들에 비해 착용감도 손쉽게 조절할 수 있어 실용적이었다고 합니다. 블뤼허가 고안한 이 부츠 덕분에 진흙탕이었던 워털루 전장에서 연합군이 승리할 수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때 영국의 장군이었떤 웰리턴 공이 바로 '웰링턴 부츠'를 고안한 장본인 입니다.) 따라서 이런 부츠를 고안한 블뤼허(Blücher) 장군의 이름을 딴 이 부츠를 블러쳐(Blucher)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블러쳐의 원형을 고안해낸 프로이센의 블뤼허(Blücher)>

 

 

요즘엔 딱히 생각나는 주제가 없어서 생각없이 패션 커뮤니티 사이트를 보다가 '이거에 대해서나 써볼까?'하고 글을 쓰는 편입니다. 그런데 좀 알아보니 정보가 너무 많고 역사가 너무 길어서 글을 쓰다가 중간에 포기한 주제들도 있었는데 이번 편은 이 정도에서 끝난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번 글을 쓰다가 워털루 전투의 웰리텅 공에서 '웰링턴 부츠'라는 소스를 얻은 것 같아 주제 하나를 꽁으로 얻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구매욕 증진을 위한 사진들로 마무리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