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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계백 장군이 나당 연합군과의 최후의 결사 항전을 앞두고 가족들이 당할 수모를 생각하여 미리 처자식을 베어버린 일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하지만 영화 '황산벌'에서는 이 장면에서 계백 장군 역을 맡은 박중훈 씨가 처자식에게 '호랭이는 죽어서 거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혔다..제발 깨끗하게 가장께'라고 하자, 계백 장군의 부인 역을 맡은 '김선아' 씨는 이를 비틀어 "아가리는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씨부려야제 호랑이는 가죽 땜시 디지고 사람은 이름땜시 디지는거여 이 인간아!!"라고 외칩니다.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 장군의 부인 말대로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 것(혹은 사는 것)이고, 이후에는 그 실체없는 이름만 공허하게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죽어도 그 실체가 뚜렷한 마스터필름 홀스하이드 가죽자켓을 마련했습니다. 요즘 지출이 과해서 소비를 줄이려고 했는데 저에게 맞는 40사이즈는 2점 밖에 남지 않았고, 다음 시즌에는 이 제품을 생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냉큼 질러버렸습니다. 소비를 줄여 저축하는 삶도 중요하지만, 이 'Sunburst' 자켓은 지금 아니면 살 수 없는 'Now or Never'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마스터필름 홀스하이드 선버스트 (Master Film 'Sunburst' 30's sport jacket)


제 옷장의 국적을 따져보면 거의 바다 건너의 것들인데 무슨 국내 브랜드에 대한 경시 같은 것이 아니라 꼴에 헤리티지가 있는 브랜드를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신들만의 색깔을 갖고 좋은 결과물들을 선보이는 브랜드를 보면 훗날에는 해외의 브랜드들 못지 않게 성장할 것을 기대하며 진심으로 응원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지난 번에도 언급했지만 이스트로그와 스펙테이터를 좋아하고, 현재는 잠시(?) 영업을 중단한 아카브(Acarve)라는 데님 브랜드도 진심으로 응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 덕분에 '마스터필름(Master Film)'이라는 국내 브랜드를 알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제품 설명들을 보니 참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결과물들을 내놓는 것 같아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딱히 요즘 라이더 자켓을 구입할 생각은 없었는데, 친구가 매장에 가서 한 번 보자고 해서 따라갔다가 저만 구입하고 나와버렸습니다. 친구가 구입하고 싶은 모델은 재고가 제법 넉넉히 있는 반면에 제가 한눈에 반한 '선버스트(Sunburst)' 제품은 브라운 색의 40사이즈가 2점 밖에 남지 않았었는데 내년부터 생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대표님의 말 때문이었습니다. 

보통 그런 말을 하면 상술이라 생각할텐데 아래 사진에서 이 자켓의 등판을 보면 납득이 가실겁니다. 누가봐도 복잡한 공정이 들어갈 것 같은 디테일들인데 밋밋한 등판을 갖고 있는 제품보다 5만원 밖에 비싸지 않으니 제가 봐도 이걸 계속 만드려나...싶었습니다.




등판의 디테일은 모터사이클을 탈 때 등을 굽히면 등판의 세로 선들이 벌어지는 아주 화려한 디테일 입니다. 실제로 30년대에 나왔던 라이더 자켓들은 아래의 사진보다 더 많이 벌어졌지만 마스터필름의 대표님은 그 것이 너무 과해보여서 딱 보기 예쁜 정도로 디자인 했다고 합니다.




가죽은 일본 신키(新喜) 사의 홀스하이드(Horsehide)로 현재 생산되는 말가죽 중 가장 고가의 것이며 질이 좋은 것 입니다. 홈페이지의 설명을 보면 아닐린으로 마무리된 레더에 안료를 얹어 차심현상이 일어나는 가죽으로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말가죽 특유의 잔주름과 모미가 강한편이라고 합니다. 아닐린 염료는 가죽에 잘 스며들어 색을 입히기가 좋지만 가죽의 표면이 그대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차심(茶芯) 현상이란 가죽 표면에만 염료를 발라 사용에 따라 마모가 생기면서 가죽 본연의 색상이 올라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자켓의 경우 차심현상이 진행되면 지퍼에 달린 레더 스트랩의 색이 올라올 수 있는 것이죠. 마스터필름 대표님께서는 A/S를 통해 다시 염료를 입힐 수 있다고 하셨는데 저는 왠지 차심 현상이 진행된 자켓이 훨씬 멋지지 않을까 기대됩니다.


<30년대 아트데코 타입으로 복각된 지퍼>


또한 마스터필름의 가죽자켓은 신키 사의 홀스하이드를 사용한 것만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부자재도 구현하려는 시대의 것들을 복각한 데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지퍼는 1930년대에 사용된 아트테코 타입으로 복각된 지퍼를 사용했습니다. 또한 후면의 양쪽에 달린 벨트의 버클의 경우에도 오리지널 데드스탁 해머리드 버클을  직접 복각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시에는 스틸과 브라스를 이용해 자재를 생산하였고, 마스터필름은 솔리드브라스로 변형이 없는 버클을 생산하였다고 합니다. 마스터필름이 갖고 있던 1930년대 오리지널 제품의 자재는 스틸이었지만 스틸로 제작할 경우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식이 생겨 녹이 슬고 그 녹이 옷에 퍼지기 때문에 변형이 없는 솔리드브라스를 사용한 것이라 합니다.



<솔리드 브라스로 제작된 버클>


<빈티지 타입으로 제작된 Corozo 캣츠아이 소매버튼>



또한 안감 또한 기모가 일어나는 플란넬 타입의 코튼을 사용하여 착용감이 우수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입어봤을 때 반팔 티셔츠를 입고 착용해도 착용감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제품의 포켓 안쪽에는 유니언 라벨이 달려있는데 United Garment Workers of America의 라벨이 달려있는데 마스터필름의 유니언 라벨에는 America 대신 Korea가 들어가있습니다. 유니언 라벨은 시대별 특징이란게 크게 없어서 이 것만으로는 연대측정이 불가능하지만, 재밌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부터 홀스하이드 레더자켓에 대한 로망이 있긴 했지만, 당장 구매할 생각은 없었는데...마스터필름 매장을 방문했다가 자켓이 너무 멋져 덜컥 구매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마스터필름은 현재 이태원 쪽으로 이전하는 중인데 이전이 완료되면 지갑을 두둑하게 하고 방문해서 자켓을 구경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가 구매한 Sunburst 제품 외에도 멋진 제품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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