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Fashion

<B> 본드, 제임스 본드. 그리고 나토 밴드를 끼운 다이버 워치

낙낙이 2016. 8. 20. 23:10

<B>


저는 2년전 여름에 영화 007 스카이폴을 다시 보고 제임스 본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007 시리즈를 5~6편 밖에 안봐서 시리즈의 팬이라고 하기 어렵고, 007 시리즈나 제임스 본드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 것이 없지만, 어쨌든 그 시절의 저는 제임스 본드에 꽤 심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007 시리즈라기 보다 샘 맨데스 감독의 '스카이폴'이란 영화에 사로잡혔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007 시리즈에서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Bond, James Bond"와 같이 고정된 멘트도 있지만, 시리즈마다 본드걸, 본드워치, 본드카 등의 변화가 주목받기도 합니다. 저는 그 중 본드워치도 아닌 본드워치에 끼운 워치 스트랩에 집중했습니다.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이었던 2012년에 공개된 이미지라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합성한 티가 역력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007 시리즈 제 3탄인 골드핑거(Gold Finger) 중 한 장면인데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롤렉스 서브마리너 모델에 나토 밴드를 착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사진을 보고 제가 갖고 있는 다이버 워치에 나토밴드를 끼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사진에 얽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왼쪽 사진을 언뜻 보면 검은색과 회색 스트라이프로 보이지만, ‘골드핑거’ 블루레이판인 오른쪽 사진을 보면 색깔은 검은색 혹은 네이비 바탕에 올리브그린 줄무늬, 그 경계 부분에 아주 폭이 좁은 빨간색도 들어가 있습니다. 블루레이 판이 공개된 이후에 한동안 검은색/회색 줄무늬 나토 밴드를 ‘007밴드’라고 판매해 오던 여러 판매자들이 ‘골드핑거’ 블루레이 출시 이후 새로운 색깔의 밴드를 서둘러 확보하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007 시리즈의 최신작 스펙터에서 제임스 본드가 차고 나온 오메가 씨마스터 입니다. 오메가 씨마스터는 실제로 영국 해군들이 많이 착용하여 007 제 17탄 골든 아이(Golden Eye)부터 본드 워치가 오메가 씨마스터로 대체되었다고 합니다. 스펙터에서 제임스 본드가 오메가 씨마스터에 끼운 나토밴드는 검정, 회색 스트라이프로 제 3탄 골든핑거에서 끼웠던 나토밴드보다 훨씬 깔끔한 느낌인 것 같습니다. 






나토밴드는 나토(NATO)군 보급용으로 만들어진 군용 시곗줄로 007 골드핑거에서 초대 제임스 본드인 숀 코네리가 끼운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검색을 해본 결과 실제는 이와 약간 다르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다음은 조선일보의 한 칼럼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나토군 보급용의 ‘나토밴드’가 만들어진 것은 1973년이어서 1964년 영화에 나올 수가 없다. 이 시곗줄은 영국군용으로 생산돼 나토군에 공급된 것으로, 당초 영국군이 부여한 일련번호를 따라 ‘G10’으로 불리다가 나토군의 품목 분류번호(Nato Stock Number·NSN)를 받게 되면서 ‘나토’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지금 ‘나토밴드’는 직물(주로 나일론)로 만든 시곗줄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코너리가 ‘나토밴드’를 찼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토밴드’로 불려온 시곗줄의 원형이 1973년에 영국군용으로 나온 G10이라고 본다면 골드핑거의 시곗줄을 ‘나토밴드’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언급일 수 있다.

한 시곗줄 쇼핑몰(www.esprit-nato.com)에서 이런 내용을 정리하면서 영국 국방부(MOD)의 물자 규격 문서(DEF-STAN)를 첨부했다. 시계도 아닌 시곗줄일 뿐이지만 엄연한 군수물자인 만큼 요규 규격이 까다롭고 분명하다. 밴드 길이 280mm(해군의 잠수복 위에도 착용 가능한 충분한 길이), 두께는 1.2mm, 폭 20mm, 색상은 회색(Admiral Grey)의 단색, 시곗줄 끝과 구멍 부분에 열처리, 밴드를 여미기 위한 버클과 금속 고리 등이다. ‘골드핑거’에 등장한 시곗줄과는 여러모로 차이나는 디테일이다.

숀 코너리는 ‘골드핑거’ 도입부에서 잠수복 차림으로 ‘적진’에 침투해 폭탄을 설치하는데, 이 때 롤렉스(빈티지 서브마리너라고 한다)에 직물 밴드를 물려 손목에 찼다. 영국군이 G10을 만들면서 해군의 잠수복을 염두에 뒀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일반적인 브레이슬릿(bracelet)이 아닌 직물 밴드를 택한 것은 디테일에 상당히 신경쓴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말 그랬을까? 그보다는 잠수복에 찰 수 있는 시곗줄을  촬영이 임박한 시점에서 급히 수배한 흔적이 아닌가 싶다.

자세히 보면 코너리가 차고 있는 시곗줄은 시계와 사이즈가 안 맞는다. 서브마리너의 러그(시곗줄을 부착할 수 있도록 시계 몸통에서 다리처럼 튀어나온 부분) 폭은 20mm인데, 코너리의 밴드는 그보다 폭이 좁다. 스프링핀이 노출된 모양을 보면 시곗줄 폭은 16~17mm 정도밖에 안 돼 보인다. 아마도 일반 시곗줄로는 잠수복 위에 시계를 찰 수가 없어서(잠수복 위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는 장면도 영화에 나온다) 나일론 밴드를 구했는데, 급하게 찾으려고 보니 사정이 여의치 못해 사이즈가 안 맞는 것을 그대로 화면에 내보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러니까 이 글에 따르면 007 시리즈 제 3탄 골드핑거에서 제임스 본드가 착용한 것은 '나토'밴드가 아닌 'G10'밴드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스트라이프 나토밴드는 이미 '제임스 본드 나토밴드' 혹은 '007 나토밴드'로 통하고 있습니다. 와치캣에서도 아예 제임스 본드 나토밴드라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상품의 색상이 007 제 3탄 골드핑거에서 나온 나토밴드와 가장 유사한 색상이라 그런지 제품명도 '리얼본드'인 것 같습니다. 올리브색의 줄 2개가 너무 가까워서 조금 어색해보이기도 합니다만 계속 보고 있으니 하나 구매하고 싶기도 합니다.
(참고로 PJS는 와치캣의 자체제작 브랜드입니다.)


(위 제품 사진들 외에도 색상 구성이 괜찮아보이는 제임스 본드 나토밴드들이 많아 구경해보셔도 재밌을 것 같습니다.)

http://www.watchcat.kr/product/search.html?banner_action=&keyword=%C1%A6%C0%D3%BD%BA+%BA%BB%B5%E5&page=1


다만 저는 나토밴드를 구입할 당시에 제가 보유한 다이버 워치에 스트라이프 나토밴드가 어울릴꺼란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직접 대보고 구입하고 싶었습니다. 와치캣은 서울시 강서구에 있는데, 당시 무더운 여름 날씨에 강서구까지 찾아가기는 너무 멀어서 서울 종로구에 있는 신화사에서 구입했습니다.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신화사는 흔히 '시계 줄질의 성지'라고 하는데, 2년전에 방문했을 때는 생각보다 나토밴드의 종류는 많지 않았습니다. 많지 않은 나토밴드 중에서 스트라이프 나토밴드는 제가 구입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레더밴드, 러버밴드, 메탈밴드 등 줄의 종류 자체는 다양해서 맛보기로 줄질하기는 좋아보였습니다. 
하지만 직접 자신의 시계에 대보고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고,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시계줄을 갈 수 있는 기구가 없어서 혼자 줄질하기가 어려운데, 신화사에서 구입하고 줄을 교체해달라고 하면 빠르게 교체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위 사진은 제가 갖고 있는 해밀턴 카키킹 스쿠바(Hamilton Khaki King Scuba)에 신화사에서 구입했던 스트라이프 나토 밴드를 끼운 모습입니다. 신화사에서 구입한 나토밴드는 그리 좋은 품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가격은 1만원 내외였던 것 같은데 타이맥스 위켄더의 나토밴드보다 촉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뻣뻣한 느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구매했을 때는 지금은 회색으로 보이는 부분이 원래는 흰색이었는데 너무 하얗게 보여서, 강제로 에이징을 주고 싶었습니다.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은 다소 모순적인 짓 같습니다만, 뜨거운 물에 카누 커피를 두 개 쯤 타고 줄을 담가보기도 했지만 줄의 소재 때문인지 커피색이 전혀 물들지 않아 효과가 없었습니다.

2015년에 개봉한 007 스펙터가 스카이폴보다 훨씬 부진하면서 제임스 본드에 대한 관심도 많이 떨어지고, 나토밴드에 대한 강제 에이징(?)을 포기하고 별 생각없이 2년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때가 탄 것 같습니다. 생지 셀비지진이나 가죽제품들을 몇개 갖고있지만 인내심이 부족한 탓인지 멋드러진 에이징에 성공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걸 에이징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러운 에이징으로 저의 물건이 된 것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