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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년전 여름에 영화 007 스카이폴을 다시 보고 제임스 본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007 시리즈를 5~6편 밖에 안봐서 시리즈의 팬이라고 하기 어렵고, 007 시리즈나 제임스 본드에 대해서도 많이 아는 것이 없지만, 어쨌든 그 시절의 저는 제임스 본드에 꽤 심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007 시리즈라기 보다 샘 맨데스 감독의 '스카이폴'이란 영화에 사로잡혔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007 시리즈에서 "Vodka martini, shaken, not stirred."(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Bond, James Bond"와 같이 고정된 멘트도 있지만, 시리즈마다 본드걸, 본드워치, 본드카 등의 변화가 주목받기도 합니다. 저는 그 중 본드워치도 아닌 본드워치에 끼운 워치 스트랩에 집중했습니다.
(007 시리즈 탄생 50주년이었던 2012년에 공개된 이미지라는데 오른쪽으로 갈수록 합성한 티가 역력합니다.)
아래의 사진은 007 시리즈 제 3탄인 골드핑거(Gold Finger) 중 한 장면인데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롤렉스 서브마리너 모델에 나토 밴드를 착용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사진을 보고 제가 갖고 있는 다이버 워치에 나토밴드를 끼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 사진에 얽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왼쪽 사진을 언뜻 보면 검은색과 회색 스트라이프로 보이지만, ‘골드핑거’ 블루레이판인 오른쪽 사진을 보면 색깔은 검은색 혹은 네이비 바탕에 올리브그린 줄무늬, 그 경계 부분에 아주 폭이 좁은 빨간색도 들어가 있습니다. 블루레이 판이 공개된 이후에 한동안 검은색/회색 줄무늬 나토 밴드를 ‘007밴드’라고 판매해 오던 여러 판매자들이 ‘골드핑거’ 블루레이 출시 이후 새로운 색깔의 밴드를 서둘러 확보하느라 바빴다고 합니다.
"나토군 보급용의 ‘나토밴드’가 만들어진 것은 1973년이어서 1964년 영화에 나올 수가 없다. 이 시곗줄은 영국군용으로 생산돼 나토군에 공급된 것으로, 당초 영국군이 부여한 일련번호를 따라 ‘G10’으로 불리다가 나토군의 품목 분류번호(Nato Stock Number·NSN)를 받게 되면서 ‘나토’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지금 ‘나토밴드’는 직물(주로 나일론)로 만든 시곗줄을 통칭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코너리가 ‘나토밴드’를 찼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나토밴드’로 불려온 시곗줄의 원형이 1973년에 영국군용으로 나온 G10이라고 본다면 골드핑거의 시곗줄을 ‘나토밴드’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하지 않은 언급일 수 있다.
한 시곗줄 쇼핑몰(www.esprit-nato.com)에서 이런 내용을 정리하면서 영국 국방부(MOD)의 물자 규격 문서(DEF-STAN)를 첨부했다. 시계도 아닌 시곗줄일 뿐이지만 엄연한 군수물자인 만큼 요규 규격이 까다롭고 분명하다. 밴드 길이 280mm(해군의 잠수복 위에도 착용 가능한 충분한 길이), 두께는 1.2mm, 폭 20mm, 색상은 회색(Admiral Grey)의 단색, 시곗줄 끝과 구멍 부분에 열처리, 밴드를 여미기 위한 버클과 금속 고리 등이다. ‘골드핑거’에 등장한 시곗줄과는 여러모로 차이나는 디테일이다.
숀 코너리는 ‘골드핑거’ 도입부에서 잠수복 차림으로 ‘적진’에 침투해 폭탄을 설치하는데, 이 때 롤렉스(빈티지 서브마리너라고 한다)에 직물 밴드를 물려 손목에 찼다. 영국군이 G10을 만들면서 해군의 잠수복을 염두에 뒀던 것처럼, 이 장면에서 일반적인 브레이슬릿(bracelet)이 아닌 직물 밴드를 택한 것은 디테일에 상당히 신경쓴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말 그랬을까? 그보다는 잠수복에 찰 수 있는 시곗줄을 촬영이 임박한 시점에서 급히 수배한 흔적이 아닌가 싶다.
자세히 보면 코너리가 차고 있는 시곗줄은 시계와 사이즈가 안 맞는다. 서브마리너의 러그(시곗줄을 부착할 수 있도록 시계 몸통에서 다리처럼 튀어나온 부분) 폭은 20mm인데, 코너리의 밴드는 그보다 폭이 좁다. 스프링핀이 노출된 모양을 보면 시곗줄 폭은 16~17mm 정도밖에 안 돼 보인다. 아마도 일반 시곗줄로는 잠수복 위에 시계를 찰 수가 없어서(잠수복 위에 찬 시계를 들여다보는 장면도 영화에 나온다) 나일론 밴드를 구했는데, 급하게 찾으려고 보니 사정이 여의치 못해 사이즈가 안 맞는 것을 그대로 화면에 내보낸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하지만 스트라이프 나토밴드는 이미 '제임스 본드 나토밴드' 혹은 '007 나토밴드'로 통하고 있습니다. 와치캣에서도 아예 제임스 본드 나토밴드라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http://www.watchcat.kr/product/search.html?banner_action=&keyword=%C1%A6%C0%D3%BD%BA+%BA%BB%B5%E5&page=1
2015년에 개봉한 007 스펙터가 스카이폴보다 훨씬 부진하면서 제임스 본드에 대한 관심도 많이 떨어지고, 나토밴드에 대한 강제 에이징(?)을 포기하고 별 생각없이 2년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때가 탄 것 같습니다. 생지 셀비지진이나 가죽제품들을 몇개 갖고있지만 인내심이 부족한 탓인지 멋드러진 에이징에 성공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걸 에이징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자연스러운 에이징으로 저의 물건이 된 것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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