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Fashion

<B> 기원을 찾아서 7편: 더플코트 (Duffle Coat)

낙낙이 2017. 10. 10. 08:00

<B>


처음에 이렇게 시리즈로 연재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는 '무엇이라도 찾아서 써야한다!'는 의무감까지 생겨버렸습니다. 정기적으로 결과물을 내놓는게 뿌듯하고 재밌기도 하지만 소재를 찾는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새삼 다달이 '월간 윤종신'을 발표하는 윤종신 씨가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검색하고 공부해서 이런 연재물을 쓰는 것보다는 창작을 요구하는 음악을 만드는 일이 훨씬 힘든 일임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겠죠...)



1. 더플(Duffle) 그리고 더플 코트(Duffle Coat)란?


아무튼 벌써 7편에 이르게 된 '기원을 찾아서' 시리즈의 이번 주제는 '더플 코트(Duffle Coat)' 입니다. 클래식 코트 중 유일하게 후드가 달린 더플코트는 코트 전면부를 여미는 토글 때문에 국내에서는 '떡볶에 코트'로도 통하며 종종 '더블코트'로 잘못 쓰이기도 합니다. 더플코트의 특징으로는 바다의 추위를 막기 위해 큰 후드가 달려있으며 전면부는 수평의 토글로 개폐할 수 있으며 큼지막한 포켓이 패치로 달려있고, 목부분에도 바람을 막기 위해 여밀 수 있는 버튼이 있습니다. 

이처럼 더플 코트의 특징이라 하면 전면부의 토글(toggle)이 제일 먼저 생각나기 때문에 '더플(duffle)'의 의미는 당연히 토글에 관련이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더플은 벨기에의 항구도시인 앤트워프에 속해있는 작은 도시인 더플(Duffle 혹은 Duffel)에서 생산하는 원단의 이름 입니다. 생산지와 원단의 이름이 동명인 것인데, 더플코트라는 이름의 유래는 사실 토글이나 큰 후드가 아닌 원단에 있었던 것이지요. 더플 소재는 양의 털에서 추출하는 라놀린이라는 성분이 함유된 울 원단이었는데 천연 방수 기능을 갖췄다고 합니다. 사전에서는 더플을 '천의 표면을 작은 구슬 또는 물결 모양으로 처리한 옥나사(玉羅紗)와 비슷하다. 이전에는 많이 생산되어 18세기 무렵에는 영국에서 미국으로 수출되어 외투천으로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그 명칭만이 남아 있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더플 백(Duffle Bag 혹은 Duffel Bag) 또한 벨기에의 '더플' 원단으로 생산해서 그 이름이 '더플백'이었던 것입니다. 더플백 역시 현재는 더플 원단이 아닌 원기둥 모양의 쉐잎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습니다. 논산훈련소를 수료하면 자대로 짐을 싸고 갈 '더플백'을 나눠주는데, 정확한 명칭을 몰라 '더블백'이라 부르던 분대장이 기억납니다.)


<아무도 정확한 정체를 모르는 타카히로 키노시타의 더플코트>



2. 더플코트의 기원에 대한 논쟁


이 글을 쓰기 위해 더플 코트의 기원에 대한 국내·외의 여러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대부분 1900년 이후의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 복제로서의 더플코트와 이후의 상용화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들은 일치하지만, 1900년 이전 더플코트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으며 아예 한쪽을 부정해버리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더플코트의 기원에 대한 여러가지 주장들을 정리해보고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해보겠습니다. 


(1) 17세기 벨기에 항구도시인 앤트워프의 남쪽에 있는 더플 지역에서 검은 색상의 두꺼운 울로 만든 원단인 더플로 만든 코트이며 디자인의 기원은 추운 북해에서 작업하는 벨기에 어부들을 위한 작업복에서 시작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코트 디자인은 영국으로 퍼져나가 그 디자인이 영국 해군으로 넘어갔다는 주장입니다.


<항구도시인 앤트워프(안트베르펜)의 남쪽 지역인 더플(Duffel)>




(2)-1 더플코트의 디자인은 19세기 후반에 영국 해군에 외투를 납품하던 존 패트리지(John Partridge)가 1850년대에 유럽에서 인기였던 폴란드의 밀리터리 코트였던 프록 코트(Frock Coat) 풍의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얻어 1887년에 디자인 한 것이 원형이며 앞서 말한 벨기에의 더플 원단을 이용하여 만들기 시작했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 디자인이 발전해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 해군의 방한 외투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2)-1과 (2)-2 주장을 하는 GENTLEMAN'S GAZETTE라는 사이트에서 근거로 드는 1850년대 폴란드 프록 코트 디자인>

롱코트 쉐잎에 수평 모양의 토글과 후드가 현대 더플 코트를 연상시키기는 하지만 이 사진은 해당 사이트에서 밖에 나오지 않는 것이 신빙성이 떨어뜨립니다.


(2)-2 더플코트 디자인의 원형은 19세기 후반 영국의 존 패트리지(John Partridge)가 폴란드의 밀리터리 코트였던 프록 코트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고, 더플 원단의 이름을 따서 더플코트라고 지었지만, 더플코트는 벨기에의 더플지역에서 생산된 적이 없고 애초에 더플 원단으로 제작된 적도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의 근거는 벨기에 더플 지역에서 생산되었던 더플 원단이 15세기에 유럽 전지역으로 수출되긴 했지만 검은색 양모였기 때문에 더플코트는 더플 원단으로 제작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은 그 근거를 더플 원단은 검은색 양모였던 것에 비해 영국 해군들이 입었던 더플코트는 원래 베이지 색이었던 것에서 찾습니다. 또한 1900년경 영국 해군성에서 해군 의복의 원단을 자국의 울(Wool)로 만들 것으로 요구했기 때문에, 영국 해군의 방한용 아우터였던 더플코트도 예외없이 자국의 원단을 사용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근거를 아주 많이 들어서 그럴듯해보이긴 하지만 더플코트가 애초에 벨기에 더플 지역에서 생산된 적도 없고, 더플원단을 사용한 적도 없는데 왜 '더플 코트'라는 이름을 지었냐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19세기 후반 인물로 주장하는 존 패트리지와 더플코트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해당 사이트에서 밖에 나오지 않으며 John Patridge라는 영국 브랜드가 있긴 하지만 1969년에 설립된 것으로 나옵니다.


제 생각에 (1)의 주장이 제일 그럴듯하고, (2)의 주장은 근거가 많긴 하지만 근거들이 신빙성이 없고 주장들이 특정 시대에 한정되어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1)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벨기에 더플 지역이 속한 앤트워프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17세기 혹은 그 이전부터 더플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했던 울로 어부들의 외투를 만들어 입었다는 것은 상당히 타당해보입니다. 그리고 더플 원단이 18세기 이전에 이미 유럽 전지역으로 퍼졌다는 것은 (2)의 주장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2)-2에서 초기 영국 해군의 더플코트는 카멜 베이지 였기 때문에 흑색 양모 원단이었던 더플일리가 없다는 것인데, 1890년대 영국 해군성에서 해군의 방한용 외투로 더플코트를 지정하기 이전에 이미 더플 소재의 더플코트가 존재할 수도 있었다는 전제는 아예 무시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아무래도 '더플'의 다른 어원은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영국 해군이 더플코트를 입기 전부터 존재했던 더플코트들은 벨기에의 더플 원단으로 만든 코트여서 '더플 코트'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 같습니다.



3. 제 1,2차 세계대전 영국 해군의 더플코트와 몽고메리 장군


더플코트는 1890년대 영국 해군에 북해경비근무용 보급품으로 처음 채택되었다고 합니다. 1900년경에는 34oz의 영국 산(産) 울(Wool)만으로 제작했는데, 당시의 원단은 지금과 느낌이 비슷하지만 무게는 약 2배나 더 무거웠다고 합니다. 기본적인 밀리터리 더플코트는 원래 카멜 베이지색이였지만 20세기부터는 브라운, 카키색도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더플코트의 납품업체였던 Ideal Clothing(아이디얼 클로딩)에서는 해군을 위해서만 제작했었는데, 육군과 공군들 사이에서도 이 더플코트가 거래되는 등 인기를 누려 2차 세계대전 전에는 이미 육·해·공군 모두에 납품을 했다고 합니다. 이 Ideal Clothing이란 업체는 바로 영국에서 더플코트를 처음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몽고메리(ORIGINAL MONTGOMERY) 사(社)'의 원래 이름입니다. 바로 뒤에 언급하겠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으며 더플코트를 입었던 것으로 유명한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의 이름을 따서 브랜드 이름을 '몽고메리(ORIGINAL MONTGOMERY)'로 변경한 것입니다.


<더플코트를 착용한 영국 해군들, 출처: 몽고메리(ORIGINAL MONTGOMERY) 공식 홈페이지



앞서 말했듯이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 더플코트는 영국해군의 유니폼으로 활용되었는데 특히 영국의 해군 장군이었던 '버나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가 더플코트를 즐겨 입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더플 코트는 '몽고메리 코트(Montgomery coat)'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몽고메리 장군은 2차 세계대전 당시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영국군 총사령관으로 활약하기도 했는데, 그가 입던 더플코트는 1940년 5월 덩케르크(Dunkirk) 철수 작전 당시 지역 주민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설이 있습니다.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의 애칭이 '몬티(Monty)' 였는데, 그와 그의 부대를 식별하는 수단으로서 더플 코트를 이용하기도 해서 '몬티 코트(Monty Coat)'라 불리기도 했답니다.


<아주 큰 더플코트를 입고 있는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했으며 SAS(Special Air Service, 영국 공수 특전단) 특공대를 창시한 데이비드 스털링 경 (Sir David Stirling) 또한 더플코트를 정말 좋아했다고 합니다. 사막은 밤이 되면 춥기 때문에 데이비드 스털링 장군은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작전 수행 시 더플코트를 착용한 것이 유명하기도 합니다.


<사막에서 SAS 활동시에도 더플코트를 착용했던 데이비드 스털링 경>



4. 종전 후 더플코트의 유행


이러한 더플코트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영국군에 의해 착용되었는데, 2차 세계대전 전후 영국 국방부는 엄청난 양의 더플코트 군수품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이에 영국 정부는 1951년 노동자들을 위한 Glove와 Overall을 생산하던 Harold & Freda Morris 형제에게 더플코트의 대량의 재고를 판매하게 됩니다. 대량의 더플코트를 사들인 모리스 형제는 글로버올(Gloverall)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판매를 시작하게 되는데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불과 4년만에 군에서 사들인 재고를 모두 판매하였습니다. 

정부로부터 사들였던 군납품을 모두 판매한 글로버올(Gloverall)의 모리스 형제는 더플코트 생산을 계속하기로 결정하고, 재단사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체적으로 더플코트를 생산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군사용 더플코트가 아닌 '글로버올(Gloverall)'​ 만의 구조적인 핏, 안감의 타탄체크등의 디자인을 만들어냅니다. 이 당시에 목재 토글(Wooden Toggle)을 쇠뿔로 바꾸고, 밧줄은 가죽으로 변경한 것입니다. 그리고 입지전적의 영국 해군이었던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의 애칭이었던 '몬티(Monty)'의 이름을 딴 '몬티 코트'가 글로버올의 시그니쳐 모델이 되는 것이죠.



<물 들어올 때 노 저을 줄 알았던 글로버올(Gloverall)의 모리스 형제>


즉 영국 해군에 더플코트를 처음 납품했던 브랜드는 Ideal Clothing, 즉 몽고메리(Original Montgomery)는 이고, 2차 세계대전 종전 후(後) 밀리터리 아우터였떤 더플코트를 유행시켰던 것은 글로버올(Gloverall)인 것이죠.




<오리지널 몽고메리의 더플코트를 입고 잠수정 위에 서있는 영국 해군>


런던 트래디션(London Tradition) 또한 퀄리티 좋은 더플코트를 만드는 브랜드로 유명하지만, 2001년에 설립된 브랜드로 역사와 정통성으로 몽고메리(Original Montgomery)와 글로버올(Gloverall)에는 비할 바가 못됩니다.  


<몽고메리(Original Montgomery)보다 짬을 100년은 덜 먹은 런던 트래디션(London Tradition)>


영국의 나이젤 카본(Nigel Cabourn)에서는 몽고메리 장군이 입었던 4토글의 더플코트을 복각하여 '몽고메리 코트'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기원을 찾아서' 시리즈는 이 것으로 벌써 7번째지만 이렇게 글을 쓰기 힘들었던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플 코트의 기원에 대해서 여러가지 주장이 있기 때문에 어떤 주장이 제일 타당한지 논리적으로 따져보고, 제가 생각한 결론을 써놓긴 했지만 뭐가 맞는지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건 몽고메리(Original Montgomery)'가 가장 오래된 더플코트 브랜드이며, 글로버올(Gloverall)이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더플코트를 가장 상용화 시킨 브랜드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글로버올의 '오리지널 몬티(Original Monty)' 제품이 가장 많이 팔리며 다른 브랜드와 협업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더플코트를 하나 가질 수 있다면 나이젤 카본의 몽고메리 코트(Montgomery Coat)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말도 안되게 멋있는 나이젤 카본의 '몽고메리 코트(Montgomery Coat)'>


이렇게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더플코트가 이렇게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는 옷인지는 몰랐습니다. 더플 코트 때문에 진이 빠져서 다음 주제는 좀 가벼운걸로 하고 싶네요... 마무리는 언제나 그렇듯 더플코트 짤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