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Fashion

<B> 기원을 찾아서 1편: 레지멘탈 스트라이프(Regimental Stripe)

낙낙이 2017. 10. 3. 13:29

<B>


제가 10대에 전자사전을 처음 갖게 되었을 때 전자사전에 있는 테트리스, 오목 등의 기본 게임 다음으로 많이 했던 것은 약어(acronym)을 찾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LCDLiquid Crystal Display, USBUniversal Serial Bus 같이 약어의 풀네임을 찾아보는 것이죠. 일상에서 쓰는 약어의 풀이를 찾아보면 단어 자체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어서 재밌다고 할까요. 이처럼 단어의 기원까진 아니더라도 단어에 함축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꽤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넥타이를 알아볼 때 패턴 이름 중 이해가 안됐던 것이 스트라이프 패턴을 레지멘탈(regimental)’이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보편적으로 쓰는 '스트라이프(Stripe)'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레지멘탈(regimental)이라 쓰는 것이 의아했습니다. 레지멘트(regiment)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군대 편성 단위인 연대(聯隊)’란 뜻으로 나옵니다. 레지멘탈 패턴을 직역하면 연대 패턴정도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영국군의 역사와 관계가 깊습니다.


<메멘토모리 판매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REGIMENTAL" 카테고리>



영국은 명예혁명의 결과물인 권리장전(Bill of Rights)에 따라 영국은 평화 시에 상비군(육군)의 징집 및 유지를 하지 못했고, 육군은 각 지역을 기반으로 부대가 형성되어 해당 지역의 영주가 부대를 차출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영국의 최상급 상설부대 편성 단위가 연대이며, 이러한 연대는 앞서 말했듯이 지역의 영주 즉 귀족가문과 연관이 깊은 것입니다이때 영국의 각 연대는 지역 귀족 가문의 문장에 따라 스트라이프 패턴의 깃발을 갖고 있었고 이를 레지멘탈 스트라이프(Regimental Stripe)’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로얄 웨일스의 연대기>

<로얄 스코틀랜드 연대기>


 

레지멘탈 스트라이프의 시초는 17세기 영국에 있었던 연대 기()에 있지만 그것이 대표적인 넥타이 패턴으로 자리 잡는 데는 2~3세기가 더 걸립니다. 레지멘탈 스트라이프가 하나의 유행으로 번지게 된 것은 1880년 옥스포드 대학 엑시터 칼리지(Exeter College) 보트클럽의 조정 선수들의 모자로부터 시작됩니다. 당시 엑시터 칼리지의 조정 선수는 보터 햇(boater hat)에 있는 팀컬러 햇 밴드(Hat Band)를 풀어 목에 맸는데, 이것이 유행처럼 뻗어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조정경기 선수들이 썼던 보터 햇(boater hat)>


이를 계기로 19세기 후반 영국 캠브리지(Cambridge) 대학과 옥스퍼드(Oxford) 대학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레지멘탈 타이를 스쿨타이(클럽타이)로 지정하며 레지멘탈 타이의 유행은 빠르게 퍼져나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옥스포드 기념품 판매 사이트에서 파는 레지멘탈 타이>



<영국 리치몬드 스쿨(Richmond School)의 스쿨타이>


 

일례로 아래 사진에서 오른쪽에서 두번째 타이는 옥스퍼드 내의 뉴맨 소사이어티(Newman Society)라는 클럽의 타이입니다. 뉴맨 소사이어티는 1878년 존 헨리 뉴맨(John Henry Newman)이 만든 옥스퍼드 내 가장 오래된 카톨릭 클럽입니다. 실제로 왕족과 대주교, 주교들로부터 후원을 받았던 뉴맨 소사이어티는 자신들의 클럽타이의 패턴을 Papal Gold(교황의 금색), 옥스퍼드 블루, Cardinal Red(추기경의 붉은색)으로 구성했습니다.


 


옥스퍼드 블루라는 색이 언급되었는데 캠브리지 블루라는 색도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옥스퍼드 대학과 캠브리지 대학의 조정경기 팀 사진인데, 왼쪽이 캠브리지 블루’, 오른쪽이 옥스포드 블루입니다.


<좌측은 캠브리지 조정경기 팀, 우측은 옥스포드 조정경기 팀 입니다.>


<캠브리지 블루는 에메랄드에 가까운 색 같습니다.>


 

영국 대학에서 유행처럼 번진 레지멘탈 타이는 미국에서도 유행처럼 번지게 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레지멘탈 타이는 영국의 레지멘탈 타이와 패턴의 좌우가 뒤집어져있습니다. 미국의 레지멘탈 패턴은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사선이 떨어지며 이를 리버스(reverse) 레지멘탈이라고 부릅니다원래 영국과 앙숙이었던 프랑스는 영국의 레지멘탈과 좌우방향이 다른 리버스 레지멘탈을 쓰고 있었는데, 미국이 리버스 레지멘탈을 쓰는데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1. 1920년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에서는 영국의 레지멘탈 패턴을 따서 타이를 만들지만, 보수적인 영국인들이 미국 브랜드가 영국의 레지멘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내자 결국 브룩스 브라더스는 방향을 반대로 한 "리버스 레지멘탈"을 사용하게 되었다.

2. 미국의 재단기계는 영국의 재단기계와 구동방향이 반대였기 때문에 패턴작업을 반대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다 미심쩍긴 합니다만 1번이 다수설인 것 같고 그나마 설득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정면에서 봤을 때 사선의 방향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향하는 브룩스 브라더스의 미국식 레지멘탈 타이들>



<1920년대에 제작된 브룩스 브라더스의 빈티지 타이. 하나같이 사선이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로 떨어진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레지멘탈 스트라이프의 시초는 연대(귀족 가문), 대학, 클럽 등을 상징하는 패턴이었기 때문에 영국 사람들은 누군가를 맞이하는 자리 등에서는 가급적 착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제 넥타이를 만드는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나오는 패턴 중 하나라서 일반 사람들이 지킬 TPO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물론 지키면 더 좋겠습니다만...) 셔츠는 원래 속옷이었기 때문에 자켓을 벗는 것은 신사답지 못하고, 셔츠 안에 이너를 입는 것은 넌센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도그마라고 할까요. (그런 분들은 유니클로에서 출시되는 에어리즘과 히트텍은 거들떠도 안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5년 G7 정상회담>


<2017년 G20 회견장에서 각국 정상들의 단체사진. 레지멘탈 타이가 드물게 보이는 편인 것 같습니다.>



사실 레지멘탈 (스트라이프) 타이에 이렇게 긴 스토리가 있는지 모르고 리서치를 시작했는데...생각보다 글이 길게 나온 것 같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아는척하고 싶어서 항상 이것저것 찾아보다 보니 저도 많이 배워갑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