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Culture

[묶어보기]2. 채털리부인의사랑 & 공산당선언 - 왜 그녀는 떠났을까?

낙낙이 2015. 8. 18. 19:36

 1.<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은 지 꽤나 되었지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역시 명작은 명작이다. D.H.로렌스가 이 책을 처음 발표했을 때, 외설논란으로 물의를 빚은 것도 너무나 명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발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 사랑이야기,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새싹을 엿보았다면 너무 비약인걸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왠지 모르게 그럴싸한 그 흐름을 읽어볼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의견이며 엄정한 분석도 없다. 그저 읽어가는 그 순간마다 사회주의로 흘러가는 시대를 느꼈을 뿐이다. 참고로 딱히 묶어볼 작품이 생각이 안 나서 방금 떠오른 공산당선언을 묶어보았다. 난 공산당 선언을 읽은 적이 없기에 채털리부인을 가지고 대부분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내용은 간단하다. 부잣집 자제인 '클리퍼드'에게 시집 온 '코니'는 전쟁 중에 다친 남편을 수발한다. 그러던 중 사냥터지기인 '멜러즈'를 만나게되고 그에게 끌려 모든 것을 버린 채 그를 따라 도망치게 된다. 현대의 막장드라마와 비교해도 재밌는 이 사랑이야기에서 어떻게 사회주의는 나타날까? 이 작품이 사회주의로 움직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주요 인물 속에 있다. 바로 중심 인물인 코니, 클리퍼드, 멜러즈의 관계 속에서 말이다. '클리퍼드'는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받은 탄광의 소유주로 귀족층이다. 사회의 상류계급이면서 부르주아지의 형태를 띄고 있다. 요약하자면 상류 생산 계급인 것이다. 그랬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부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를 가지게 된다. 돌아온 후, 그는 집필 활동을 시작하면서 개인의 영달을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클리퍼드의 모습은 당시 자본주의의 모습과 닮았다. 부유한 귀족으로서의 그는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점점 성장하면 거대해지기 시작한 자본주의이다. 그런 그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상처를 가지는데 이를 자본주의가 변모하게 되는 길목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후의 클리퍼드의 모습은 점점 불균형을 만들며 독점의 확대를 불러오는 그 당시의 변질된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한 마디로 클리퍼드는 자본주의의 얼굴이다.

 


3. 그에 대항하는 '멜러즈'는 당연히 사회주의를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멜러즈는 샤냥터지기로 노동자집안이다. 무산계급, 즉 프롤레타리아의 전형이다. 여기서 멜러즈는 육체적인 미를 가지고 있으며, 코니를 이해한다. 병수발에 지쳐 삶의 생기를 잃어가던 코니를 말이다. 멜러즈는 이런 그녀가 여성으로의 의미를 가지게 해주는 중요한 존재이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가져올 매력과 그 역동성을 보여준다. 기존의 자본주의에 지쳐버린 사회 구성원을 보듬어주고, 새로운 가치로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는 다른 무언가를 던져줄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두 남자, 클리퍼드와 멜러즈는 대조적이다.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지만 그녀를 힘들게 하는 클리퍼드. 가진 거 하나 없지만 그녀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멜러즈. 코니가 클리퍼드를 버리고 멜러즈에게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일 수 있다. 이 모습은 당시 변질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 즉 사회주의로 향하고자 하는 사회의 흐름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4. 여기서 한번 더 생각해 볼 것은 코니가 가지는 의미이다. '코니'는 사회의 주체이자 운동하고 있는 시대의 전형이다. 그녀는 클리퍼드와 있을 때, 그를 사랑하면서도 계속 생기를 잃으며 메말라갔다. 그녀를 사회라고 생각한다면 지쳐버린 당시의 사회인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멜러즈를 만나고 스스로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행복을 얻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더 나은 사회인 사회주의와의 결합으로 이 세상이 좀더 만족스러운 시대가 되리라 믿었기에 가능했다

 

5. 이 작품의 중심인물들을 통해 우린 사랑 이야기 속에 숨어 있던 사회주의로의 순행을 찾아낼 수 있었다. 사회주의는 현재 지구상에서 실패한 이론처럼 불리고 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이 새로운 이론을 만났을 지식인의 설렘은 코니가 멜러즈를 보고 느낀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이 주장을 보고 로렌스는 큰 감동을 느껴서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로렌스는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로의 발전을 이와 같이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담아내지 않았나 한다.

 

P.S 이 소설이 성욕과도 큰 관련이 있으니 한번 프로이트의 생각도 같이 보았다. 프로이트는 문화란 성욕을 억제해서 그것을 다른 방향으로 분출시켜 무언가를 생산토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니의 경우, 클리퍼드가 다친 후 계속 그를 보필하고 돌보는 데에만 힘썼다. 이는 그녀의 성욕을 억제하고, 하나의 제도이자 문화인 클리퍼드, 크게 보면 자본주의의 구조에 억압받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멜러즈를 찾아 그에게 성욕을 분출하는 것은 기존의 제도와 문화를 벗어나 자연스러운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 사회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이 지극히 자연적인 과정이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