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ial/Culture

<B> 마라톤과 영화, 그리고 블로그

낙낙이 2017. 9. 13. 08:54

<B>


언젠가 블로그를 같이 운영하는 친구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에 관한 글을 번역해서 올린 적이 있습니다. 하루키의 수필을 몇 개 읽어보면 그가 달리기에 대해 얼마나 애착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왔던 그의 수필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강건한 정신을 구축하는 수단으로써 꾸준한 달리기를 이야기하기도 했으며, 그 이전에는 아예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수필을 내기도 했습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로서도 종종 달리기 따윈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있지만 어찌됐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하며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루키는 그런 지겨운 순간을 러너스 블루(Runner’s Blue)‘라고 부른다나 뭐라나.) 아무리 달리기를 좋아하는 그로서도 숙제하듯이 달리기를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꾸준히 달리다 보면 달리기에 대한 애착이 다시 생길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한 수필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강고한 의지를 장기간에 걸쳐 지속시키려고 하면 아무래도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가 문제가 됩니다. 일단은 만전을 기하며 살아갈 것. '만전을 기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영혼을 담는 '틀'인 육체를 어느 정도 확립하고 그것을 한걸음 한 걸음 꾸준히 밀고 나가는 것, 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경우) 지겨울 만큼 질질 끄는 장기전입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육체를 잘 유지해나가는 노력 없이, 의지만을 혹은 영혼만을 전향적으로 강고하게 유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가장 최근에 나왔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인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저의 경우에는 아마 영화와 블로그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달리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짐작컨대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은 달리기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훨씬 적을 것 같습니다.) 저는 2011년도에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에서 토요일 고정 게스트로 나오는 영화 평론가 이동진 기자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영화에 대한 애착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이동진이라는 사람 자체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직도 그가 영화에 대해 하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여 듣는 편입니다. 저는 새로 개봉하는 영화 중 볼만한 영화들이나 그가 소개하는 영화들을 숙제하듯이 탐독해나가 나름 적지 않은 영화를 꾸준히 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보는 평균적인 영화 숫자보다 조금 웃돌 뿐 나 영화 좀 본다.’고 말할 수는 없는 정도 입니다. (설령 그 정도로 많이 본다고 해도 그런 태도를 갖거나 그런 말을 하고 다니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그런데 영화를 착실하게 보다가 영화 보는 것이 지겨울 때가 있습니다.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면 그런 경우가 거의 없지만 집에서 혼자 컴퓨터로 보면 1초씩 당겨서 보거나 컴퓨터로 메신저를  하는 등 다른 작업을 하게 되어 자꾸 집중력을 잃게 됩니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꾸준한 태도로 착실하게 무언가를 해나간다는 것이 참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왓챠에 영화 별점을 등록하면 영화를 본 총 시간이 집계됩니다. 그 시간에 따라 멘트도 바뀌는데 한때는 다음 멘트가 궁금해서 영화를 숙제하듯이 본 적도 있습니다.>


 

저에게 블로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름 열심히 정보 수집을 하여 멋진 사진까지 붙여 장문의 글을 블로그에 올리면 기분이 좋고, 그걸 찾아봐주시는 분들이 많으면 더 할 나위 없이 즐겁습니다만 가끔은 귀찮아서 한 달씩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9월에는 글이 쓰고 싶은건지 13일 동안 혼자서 9개의 글을 올렸습니다만 언제 또 손을 놔버릴지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긴 정보 글 같은 경우에 소재의 고갈도 큰 이유를 차지합니다만, 착샷이나 음식점 리뷰는 왠지 모를 지겨움과 나태함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와 블로그에 빗대 이야기하긴 했지만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런 것 같습니다. 싫어하는 것을 계속하면 지겨운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좋아하는 것도 쉬이 지겨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지겨운 대로 꾸준히 하면서 단련하다보면 다시 좋아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이건 싫어하는 일이건 '어쨋든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라 생각하며 그져 성실히 착실하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블로그에 어떤 카테고리든 글을 꾸준히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