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백서

[구두백서] 4. 구두의 소재

낙낙이 2021. 7. 30. 15:07

어떤 물건이든지 그게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소비자가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소비자는 "어련히 알아서 잘 만들었겠거니" 생각하거나, 아니면 "뭔진 모르겠지만 좋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소비자가 생산자가 된 것처럼, 이건 어떤 재료로 어떤 공법으로 만들어졌는지까지 공부하고 배울 필요는 없지요.

특히나 제일 문제는 "이 재료를 썼으니 엄청 좋을거야" 혹은 "이런 공법을 썼으니 엄청 좋을거야"라고 예단을 갖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는 순간, 물건 자체에 대해서 판단하는 능력이 오히려 떨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고, 특히 천연재료를 가지고 손으로 만드는 물건들은 일괄적으로 그렇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실제 물건을 사용하시면서 판단하시는 것들이 가장 중요할 겁니다.  

어떤 태너리에서 나온 카프도 완벽하게 균질적일 수는 없고, 또 가죽은 주름이 가기 전까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알기 어려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구두의 소재가 되는 어퍼의 가죽에 대해서 다뤄보고자 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사실 저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서 잘 적어주신 분이 있습니다. 보다 전문적인 내용은 이 포스팅을 참조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https://blog.naver.com/doppiouso/222179665899)

 

[가죽의 종류]

검정색 옥스포드 구두를 살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소재는 박스 카프(Calf)입니다. 박스 카프는 6개월 미만의 송아지로 만들어져(...) 조직감이 치밀하고 촘촘하지요. 적고 나니 뭔가 숙연해집니다. 

그레인 레더는 이렇게 표면에 조약돌 같은 모양이 있습니다. 대체로 그레인 레더가 내구성이 좋다고 합니다. 다만 드레시한 느낌은 떨어지죠.

첫 구두를 사시는 분이 그레인 레더(Grain leather)를 사시거나 하지는 않겠죠. 또 드레시한 구두를 코도반 가죽(Cordovan)으로 사는 경우도 드물 겁니다. 알든의 2211 NST 모델이나 애버딘 라스트를 쓰는 몇 구두는 드레스화로 결코 신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코도반 가죽으로 드레시한 구두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판단됩니다. 

그래서 좋은 구두는 대부분 카프를 소재로 하고 있고, 어느정도 좋은 구두에 가죽을 납품하는 테너리는 5개 내외로 추려집니다. 

존롭의 뮤지엄 카프로 유명한 존타(Zonta), 샤넬의 자회사인 하스(HAAS), 바인하이머(Weinheimer), 에르메스가 가지고 있는 아노네이(Annonay), 듀푸이(Du Puy) 정도로 추릴 수 있습니다. 여기에 이제 코도반이나 크롬악셀 가죽으로 유명한 미국의 호윈(Horween) 정도와 노스햄튼의 구두메이커들이 대부분 사용한다는 스웨이드를 만드는 찰스 F 스테드(Charles F Stead)정도를 추가할 수 있겠네요. 

 

바인하이머 박스 카프

영국의 비스포크 슈메이커들은 블랙 컬러의 포멀한 구두를 만들 때 최고로 치는 가죽이 바인하이머의 Box Calf라고 합니다. 당연히 제가 비스포크 슈메이커들이랑 이야기를 해본 것은 아니고, 영국에서 최고의 구두를 만들다가 한국에 들어오신 Jove Park님의 블로그에서 본 것입니다. (https://blog.naver.com/punkrider7/221636335619) 이런 풀비스포크(Full Bespoke) 구두가 한국에서도 가능할지 몰랐습니다. 링크의 구두 역시 검정색 스트레이트팁 구두이니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바인하이머는 독일의 Heintze & Feudenberg 제혁소로 1849년에 시작되어서 독일 최대의 제혁소로 성장하였다가, 환경오염이 불가피한 가죽산업의 특성상 독일에서 철퇴를 맞고 폴란드로 옮겼다는 그런 회사입니다. 

 

바인하이머는 원래 저 오데사 카프로 유명합니다. 저 오데사 카프가 에르메스가 받아가면 그 유명한 토고가죽이 되는 것이지요.

 

저는 검정색 카프로 만들어진 구두만 10켤레 넘게 가지고 있다 보니, 신발을 신다 보면 선호하는 가죽이 눈에 밟힙니다. 그런데 크로켓 앤 존스의 오드리가 가죽이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심심하고 큰 재미는 없지만 매우 정직하고 믿음이 가는 그런 소재입니다. 이 크로켓 앤 존스 핸드 그레이드의 검정색 박스 카프는 바인하이머꺼를 쓰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가지아노 걸링 등도, 에드워드 그린도 보통은 HAAS의 가죽을 쓰지만, 탑 드로워의 경우에는 바인하이머 카프를 쓰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게 뭐 검정 가죽은 바인하이머가 짱이다!! 이런건 결코 아닙니다. 정직하고 단단한 가죽이라 뭔가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느낌은 적고, 테너리마다 특성도 많이 다르니까 "위의 언급된 테너리의 가죽 정도라면 소재 자체의 퀄리티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 이렇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컨대 버윅은 듀푸이(Du Puy)의 가죽을 받아서 쓰고 있고, 까르미나나 TLB는 아노네이의 가죽을 쓰고 있습니다. 

 

[어퍼의 가죽 재단]

사실 구두 어퍼의 퀄리티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요소는 가죽의 재단입니다. 저렴한 구두일수록 가죽 전체에 꽉꽉 채워서 재단을 하게 되고, 그러니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부분도 구두를 구성하게 됩니다. 고급 구두일수록 가죽 한 장에서 만드는 구두의 숫자가 줄어들게 되고, 어느 정도 괜찮은 면을 중심으로 재단을 합니다. 

 

루즈그레인의 표면 -출처: Prabakar, Sujay, et al. "The effect of Cloisite® Na+ nanoclay filler on the morphology and mechanical properties of loose leather."  Journal of the American Leather Chemists Association  111.05 (2016)

 

근데 이게 결국 통계의 문제여서 문제가 안생기는 것은 아니지요. 가죽에는 이제 힘줄이나, 루주 그레인(Loose grain, bad grain)이라고 가죽이 진피와 표피가 뜨는 형태인데 이게 육안으로 알기 힘들고, 주름이 잡히는 순간에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게 가죽의 어퍼에 있으면... 정신적으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좋은 구두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고, 특히 이런 문제가 어퍼에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지만, 또 인생이란 게 확률이 낮다는 것이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서 구두는 어지간하면 꼭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시는 것이 좋고, 신기 전에 어퍼의 표면 정도는 면밀히 보시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