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백서

[구두백서] 6. 가격대별 구두추천 (하이엔드)

낙낙이 2021. 8. 11. 17:00

비스포크 슈즈를 제외하고, 기성화(RTW, Ready-to-wear) 중 가장 좋은 구두는 보통 100만원 이상의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정도 구두를 사서 가지고 있다면, 뭐 특별한 날에 신어야 하는 포멀한 구두를 더 구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이엔드급의 구두가 그 비싼 가격의 퍼포먼스를 보이느냐? 이건 또 다른 문제지요. 

대부분의 하이엔드들이 그렇듯 언뜻 보기에는 물건 자체가 보여주는 차이는 아주 미세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 작은 디테일에 악마가 사니까, 2배에 가까운 가격을 지불하는 것이지요.

(유니페어 기준으로 크로켓앤존스의 오드리가 80만원대인데, 존롭의 시티2는 160만원에 가깝습니다) 

저는 둔감한 사람이라, 이정도 가격대의 구두를 꼭 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아주 작은 차이에, 아주 큰 지불용의를 가진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뭐 파텍필립을 가지게 될 일은 없더라도 파텍필립이 왜 좋은지는 알아서 나쁠 것이 없으니까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봐주세요. 

 

1. 존롭 (John lobb)

존롭은 영국의 유서깊은 슈메이커인데, 1976년에 재정난으로 에르메스 그룹에 인수됩니다. 

롭(Lobb) 가문의 에릭 롭(Eric lobb)은 당시 에르메스의 CEO였던 로베르 뒤마 에르메스와 친해서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당시에 파리에 있는 존롭만 넘어갔다는 설명도 있는데, 현재 광범위하게 존롭 이름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 에르메스를 보면 이렇게 단순히 지점 하나가 넘어간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사실상 존롭의 영업과 관련한 일체의 권리가 에르메스에게 넘어갔고, 대신 에르메스는 영국 런던, 그러니까 9 St. James' Street에 있는 John lobb LTD의 일부 영업의 존속을 보장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에르메스의 존롭은 RTW만 파는 것도 아니고(존롭은 By request라는 형태로 MTO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도 이게 비스포크는 아니라고 볼 수 있겠죠), 파리에서만 판매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관련해서 2020년에 영국의 John Lobb ltd가 에르메스 그룹을 상대로 상호 및 브랜드를 불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소송을 걸었다고 합니다. 

소송을 걸 수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비스포크'에 관해서는 존롭 ltd가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긴 합니다. 

아무튼 여기서 말하는 존롭은 당연히 에르메스의 존롭입니다. 

평범한 한국인이 런던의 세빌로에서 풀비스포크 양복을 하기 어려운 것 처럼,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영국 런던에서 풀비스포크로 존롭 구두를 사기는 어렵죠. 가격대는 보통 1000만원 내외라고 하는데, 저도 한번 보고 싶습니다. 

존롭 시티 2(John lobb city 2)

존롭의 대표모델인 시티2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니페어에서 판매하고 있구요. 가격은 1,569,000 원으로 생각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라스트는 존롭의 대표적인 7000 라스트입니다. 

이정도 가격대의 신발 중에서는 힐컵이 꽤 큰 편으로 평가받는데, 뭐 당연히 실물은 이쁩니다. 

크로켓앤존스의 오드리가 진화한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은 디자인입니다. 

 

2. 에드워드 그린 (Edward Green)

에드워드 그린은 1890년에 노스햄튼(영국의 성수동같은 동네)에서 시작한 구두회사입니다. 

이런 회사들의 역사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여기저기 팔리고 파산할 뻔 하고 우여곡절을 겪다가 

존 휴스틱(John Hlustik)이라는 사람이 인수를 하였고, 이후에 브랜드 재건에 나서서 

랄프로렌 퍼플라벨 신발을 외주 맡아서 생산하는 등 평판을 쌓아서 지금은 영국에서 가장 좋은 기성화를 파는 회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606, 202, 82 라스트 등이 유명하며, 뭔가 굉장히 둥근, 개인적으로는 영국적이라 느껴지는 형태의 구두를 주로 판매하는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그린은 보통 스킨스티치가 적용된 유팁인 도버가 많이 팔리는데, 여기서 소개할 첼시도 나름 유명한 모델입니다. 제가 아주 싫어하는 저 갈매기 형태의 스티치(영어로는 Swan neck)가 적용된 거의 몇안되는 스트레이트 팁 구두입니다. 

에드워드 그린 첼시

에드워드 그린 역시 고급 영국구두를 사려면 피할 수 없는 유니페어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유니페어는 82 라스트, 202 라스트 이렇게 판매하고 있습니다. 202라스트의 경우에는 F발볼도 선택이 가능합니다. 가격은 존롭의 시티2보다 조금 더 저렴한 1,499,000원입니다. 

구두의 전반적인 느낌은 둥글어서 첫인상에 임팩트가 강한 디자인은 아닙니다. 202는 진짜 둥글어서 좀 넙대대한 느낌이고, 개인적으로는 82가 더 이쁜 것 같습니다. 

 

3. 가지아노걸링(Gaziano & Girling)

에드워드 그린은 허울뿐인 역사라도 있지만, 가지아노걸링은 완전히 신생회사입니다. 

비스포크 슈메이커였던 딘 걸링과 라스트를 만들던 토니 가지아노가 합작해서 설립한 회사입니다. 

이런 경력 덕분인지 기성화에서는 가장 비스포크 느낌이 많이 나는 구두이고, 가지아노 걸링 덕분에 구두의 전반적인 기교수준이 높아진 것 같습니다. 

가지아노걸링은 세인트제임스2라고 브로그가 들어간 모델이 더 일반적인데, 

당연히 기본 옥스포드 구두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가지아노걸링 옥스포드

가지아노걸링의 대표적인 라스트인 GG06으로 만들어진 구두입니다. 나름 라운드 토의 라스트인데 매우 관능적인 느낌입니다. 가지아노걸링은 압구정의 안드레아 서울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지아노 걸링이 유려해서 EE로 발볼을 넓혀서 수입해 옵니다. 발볼이 넓은 대부분의 분들에게는 문제가 아니겠지만요.

어쨌든 가지아노 걸링은 영국 구두 3대장이라 불리는 JL, EG, GG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손맛(?)이 느껴지는 구두입니다.

영국 구두는 기본적으로 단정한 형태이고, 만듦새나 완성도가 높지만 그만큼 손으로 만든 투박한 매력은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가격은 위의 구두들보다 조금 더 저렴한 수준인 140만원 대로 알고 있습니다. 

 

4. 세인트 크리스핀(Saint Crispin)

언젠가 갖고 싶은 오스트리아의 구두메이커 세인트 크리스핀입니다.

지금은 루마니아 트랜실바니아에서 생산되는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제화산업이 유서깊은 나라지만, 세인트 크리스핀은 그렇게 오래된 회사가 아닙니다.

2000년대 초에 창업하였고, 창립자 중에 하나가 나와서 종키부츠(Zonkey boots)를 창립하기도 하였죠. 

그래도 세인트 크리스핀은 동유럽 구두 특유의 개성이 진하게 느껴지는, 개인적으로 꼭 가져보고 싶은 구두입니다. 

세인트 크리스핀

색상은 괴랄한 올리브라 느낌이 오묘하지만, 세인트 크리스핀이 여기서 제일 '손맛'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느낌을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보려면 헝가리의 바쉬(VASS)를 제외하고는 대안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테스토리아에서 MTO 등을 가끔 하는 것 같고, 가격은 150만원대 입니다. 

 

5. 마프테이(Maftei)

마프테이(Maftei)

2차 세계대전을 피해서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흘러 들어온 루마니아 장인이 손으로 만드는 마프테이입니다.

이런 작은 브랜드는 비스포크나 RTW나 공정에서 큰 차이가 없어서 손으로 만든 느낌이 확 느껴지는 구두입니다. 

국내에서는 예전에 슈즈피버에서 수입해서 팔았었고, 저도 한켤레 갖고 있는데 아주 마음에 듭니다. 

이렇게 올릴만큼 대중적인 구두는 아닌데, 그래도 국내에서 딥샤인을 통해서 소량이라도 수입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추가했습니다.

가격은 128만원인가 그런데, 라스티드 슈트리가 딸려간다는 점, 실물을 확인하고 살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굉장히 저렴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뭐 영국 3대장과 세인트 크리스핀 그리고 마프테이 정도만 다루었습니다.

이외에도 좋은 구두 메이커들은 많습니다. 앤서니 클레버리도 있고, 스테파노 베메르도 있고, 프랑스계열의 오베르시나 꼬르떼 등도 있지요. 뭐 더 말도안되는 수준으로 올라가면 실바노 라탄지 이런 메이커도 있구요. 

뭐 그런데 위의 브랜드들은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렵거나, 혹은 검정색 브로그 없는 옥스포드 구두를 사기에는 부적합한 것 같아서 크게 다루지 않았습니다.